저장용 블로그

12시가 되었다. 그리하여 남자는 서른 번 째 생일을 맞았다. 특별히 무언가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게임 속 캐릭터가 레벨 업 할 때처럼 팡파레가 울리거나 빛이 비추는 것을 바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언가 달라질 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엄밀히 이야기하자면 무언가 달라지기는 했다. 안 좋은 방향으로. 그녀에게 연락하기가 전보다 어려워진 것이다. 평소처럼 자연스레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가 없었다. 열 두 살. 결코 적은 차이가 아니다.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서른 살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그녀와의 간격이 더욱 벌어진 기분이었다. 십대와 삼십 대. 차가운 숫자가 그의 감정을 정의 내렸다. 도둑놈. 이상한 사람. 그리고 남자는 거기에 반박할 수단이 없었다.

 

핸드폰 알림이 울렸다. 화면을 보자 그녀가 보낸 기프티콘이 눈에 들어왔다.

 

'생일 축하해요.'

 

간단한 메시지였다. 남자는 손가락을 억지로 움직여 답변을 보냈다. '고마워요.'

 

남자는 그녀에게 늘 존댓말을 했다. 그녀를 가벼이 여긴다는 인상을 받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이 차이를 떠나 그녀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존중하는 것으로 보이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둘 사이에 놓인 세월을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남자는 어느 쪽이 자신의 진심인지 알 수 없었다.

 

남자는 담뱃갑을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고 핸드폰을 든 채 옥상으로 나왔다. 메시지에 답변은 없었다. 지금쯤이면 그녀는 아마 시험 공부에 열중하고 있을 것이라고, 학창시절의 희미한 기억이 위안하듯 속삭였다. 그럴 만도 했다. 제법 바쁠 시기니까. 하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너무 짧은 답은 아니었을까. 기분이 상한 것은 아닐까. 알 수 없다.

 

그녀는 남자가 담배를 피는 것을 싫어했다. 직접 얼굴을 볼 일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가 흡연을 위해 방을 나왔다는 낌새가 보이면 늘 담배를 끊으라고 잔소리를 했다. 그가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 뿐이었다. '줄이겠다.' 하지만 그가 그 텅 빈 대답을 지키는 일은 없었다. 몇 달이 지난 뒤에도 그는 하루에 한 갑씩, 담뱃갑을 꼬박꼬박 비웠다. 남자는 괜스레 코를 손가락에 묻고 냄새를 맡았다. 매캐한 잿가루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남자는 손을 털었다. 그렇게 하면 손가락에 배인 냄새가 가시기라도 할 것처럼.

 

담배를 다 태운 뒤에도 답변은 없었다. 남자는 메신저 창을 올려 과거의 대화를 다시 읽어보았다. 느리게 화면을 굴리던 그의 손가락이 멎었다. 며칠 전,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냐는 이야기에 대한 그녀의 답변이었다.

 

'모르겠어요.'

 

그녀는 그 짧은 답을 쓰면서 제법 많은 시간을 들였다. 그 답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남자는 지금까지도 답을 내지 못했다. 그녀가 얽힌 일은 모두 그랬다. 그녀에 대해서는 그는 백지 답안을 제출하는 낙제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담배 하나를 새로 꺼내 물었다. 라이터의 부싯돌을 돌려 불을 붙이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의 메시지였다. 남자는 담배를 내던졌다. 메신저 창을 여니 웃는 얼굴처럼도 보이는 묘한 이모티콘이 눈에 들어왔다. 메신저에 스티커 기능이 있음에도 그녀는 굳이 직접 쓰는 이모티콘을 사용하곤 했다.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놀렸다.

 

'많이 바쁜가 봐요.'

 

남자는 이모티콘에 서툴렀다. 몇 번을 고쳐 써도 그의 문장은 딱딱했다. 그녀와 그 사이의 간격이 드러나는 것만 같아 그럴 때마다 남자는 서글펐다. 그녀의 답장은 곧바로 돌아왔다. 시험 준비 때문에 많이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남자는 또다시 자신의 고민을 유보했다. 지금의 자신은 그녀의 고민을 들어주는 존재로 족하다는 것이 그가 다시 한번 내린 결론이었다. 그 이상을 그는 바라지 않았다.

 

그리하여 남자는 그녀의 기분을 풀어줄 답변을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서른 살이 되었어도 그다지 변한 것은 없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 남자의 소감이었다. 역시 알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그의 생각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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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  (0) 2016.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