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용 블로그

몇 년을 치장창고에 처박혀 있던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야전용 간이 침대가 끼익, 하고 비명을 질렀다. 켜켜이 싸인 먼지와 곰팡내가 뒤섞여 코를 괴롭힌다. 지친다. 자신의 방에 놓여있을 인형이 그립다. 차라리 경계를 서고 있는 동료들과 자리를 바꾸고 싶다. 안 돼, 이슬비. 체력을 온존하는 것도 필요해.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모포를 뒤집어썼다가 다시 내렸다. 불안감에 들썩이는 눈꺼풀을 억지로 끌어내린다. 빨리, 자자.


그녀의 노력은 천막이 들춰지는 소리에 맥없이 스러졌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잠깐 물건이라도 가지러 온 거겠지. 이슬비는 돌아보지 않았다. 뜻밖의 무게가 그녀의 어깨를 내리누를 때까진 그랬다.


“쉿.”


놀라 들썩이는 몸이 억눌리고 숨죽인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동시에 눈앞이 푸른 어둠으로 가려졌다. 이 감촉, 이 빛깔, 이 목소리. 이세하. 넥타이라도 끌러서 온 것일까. 머리에 떠오른 이름을 내뱉으려 입을 열자 대번에 손가락이 쑤셔 들어왔다. 어디서 긁혀서 온 것인지 눅진하게 굳은 피 맛이 찝찔하다. 혼란한 중에도 기어코 머릿속을 스쳐가는 걱정에 이슬비는 흐릿하게 쓴웃음을 흘렸다. 내 코가 석자네.


몸을 더듬는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똑, 똑, 단추 풀리는 소리. 떨리는 손길에 속도가 여의찮자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뚜둑. 몇 개는 억지로 뜯겨나간다. 거칠어지는 숨소리. 귀가 간지럽다. 땀 냄새라던가, 안 나려나. 묘하게 한가한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의외로 그녀는 제법 잠에 가까워져 있었는지도. 이 상황 전체에, 현실감이라곤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스커트의 지퍼를 내리는 냉랭한 소리가 뒤늦게 그녀의 정신을 깨웠다.


“이거, 풀어.”


제법 서늘하게 목소리를 냈다고 생각했건만 입에서 새어나오는 것은 모기 날갯짓같은 호소였다. 대답은 없다. 여보라는 듯 고개를 휘저어도 시야를 가리는 푸른 천은 요지부동이다. 변하는 것이라곤 몸을 훑는 손길 뿐. 아래로, 아래로. 얇은 천 위를 쓰다듬는 손가락의 감촉이 선명하다. 신음이 제멋대로 흐른다. 한동안 무엇도 품지 못했던 비부는 금새 젖어들었다. 턱을 타고 흐르는 침의 감촉에 이슬비는 자신이 어느샌가 입안의 손가락을 핥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속옷 위를 맴돌던 손가락이 흘러나온 꿀을 조금 퍼내올려 그녀의 달아오른 뺨에 비볐다. 지금은 안 되는데, 하는 생각도 잠시였다. 힘을 빼고 몸을 기대자 손길이 그녀를 안아들어 앉혔다.


숨죽인 목소리가 텐트를 채울 때까지는, 그로부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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