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용 블로그

메리지 블루라고, 알아? 하고 뜬금없이 그녀가 물었다. 알고 있다. 결혼 전 증후군 이야기겠지. 결혼 전의 여성 중에서는 30% 정도가 시달린댔던가. 쏟아지는 달빛 아래 그녀가 피식 웃었다. 맞아. 잘 알고 있네, 우리 세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 옆으로 내려와 귓바퀴를 간질인다. 잠자코 있는다. 눈을 감으면 그녀의 손길이 좀 더 잘 느껴질까, 살짝 감아본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종종 이렇게 군다. 외로움 타는 유치원생 아이를 다루는 선생님처럼, 그렇게 나를 어루만진다. 여느 사람이 그랬다면 싫어했겠지. 나는 애가 아니라고 했겠지. 그러나 그녀의 앞에서 나는 아이가 되어버린다. 10년, 20년. 작게, 더 작게. 마침내 나는 꼽추처럼 몸을 웅크리고 그녀 뱃속의 태아가 되어버린다. 부드러운 잠옷에 파묻힌 시야 너머로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후후, 후후훗. 같이 웃자 간지럽다며 어깨 위로 몸을 눕힌다.


자신이 없었어. 나직하게 울리는 목소리. 조용히 귀를 기울여본다. 오똑한 코가 등에 비벼져 간지럽다. 따스한 숨결도. 말이 이어진다. 나는 잘 해낼 수 있을까. 너라는 사람의 곁에서 온전한 한 쪽 날개가 되어줄 수 있을까. 불안했지. 그랬어? 내가 되묻자 수긍한다. 진작 말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 내가 먼저 알아챘다면 나았을 것이다. 눈치라던가, 하는 게 아직도 이렇게 없다. 나, 일어날래, 하고 말하니 순순히 몸을 치워준다. 냉큼 그녀를 안아 눕힌다. 봄날의 꽃잎같은 머리칼이 턱을 간지럽힌다. 팔을 뒤로 둘러 꾹 껴안는다. 세게, 더 세게. 이렇게 하다보면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답답해. 그녀가 농담처럼 말한다. 등허리로 돌아간 그녀의 팔이 꼬옥, 하고 조여왔다.


괜찮아. 아니, 네가 아니면 안 되는걸. 하니 또 웃는다. 꽃처럼 웃는다. 나는 참 못났다. 이 웃음을 계속 보고 싶다고 반지를 끼워주며 생각했을 터인데. 또 이렇게 눈치없이 굴고 만다. 그녀의 마음을 진작 알았어야 하는데. 괜찮아. 그녀가 말한다. 나와는 반대다. 그녀는 지나치게 눈치가 빠르다. 너 때문이 아닌 걸. 조곤조곤 속삭이는 말투가 또 선생님같다. 아냐. 준비하기도 전에 말이 멋대로 튀어나온다. 이젠 함께인걸. 둘이 아닌걸. 팔에 좀 더 힘을 준다. 하나로, 하나로. 혼자 고민하지 마. 고독을 미래로 확장하지 마. 어디까지가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말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되뇌인다. 아니야, 아니야. 그저 껴안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렇게 반복했다.


제법 긴 첫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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