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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제 2 - 2017.05.22
  2. 무제 1 - 2017.05.22

메리지 블루라고, 알아? 하고 뜬금없이 그녀가 물었다. 알고 있다. 결혼 전 증후군 이야기겠지. 결혼 전의 여성 중에서는 30% 정도가 시달린댔던가. 쏟아지는 달빛 아래 그녀가 피식 웃었다. 맞아. 잘 알고 있네, 우리 세하.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 옆으로 내려와 귓바퀴를 간질인다. 잠자코 있는다. 눈을 감으면 그녀의 손길이 좀 더 잘 느껴질까, 살짝 감아본다. 언제부턴가 그녀는 종종 이렇게 군다. 외로움 타는 유치원생 아이를 다루는 선생님처럼, 그렇게 나를 어루만진다. 여느 사람이 그랬다면 싫어했겠지. 나는 애가 아니라고 했겠지. 그러나 그녀의 앞에서 나는 아이가 되어버린다. 10년, 20년. 작게, 더 작게. 마침내 나는 꼽추처럼 몸을 웅크리고 그녀 뱃속의 태아가 되어버린다. 부드러운 잠옷에 파묻힌 시야 너머로 그녀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후후, 후후훗. 같이 웃자 간지럽다며 어깨 위로 몸을 눕힌다.


자신이 없었어. 나직하게 울리는 목소리. 조용히 귀를 기울여본다. 오똑한 코가 등에 비벼져 간지럽다. 따스한 숨결도. 말이 이어진다. 나는 잘 해낼 수 있을까. 너라는 사람의 곁에서 온전한 한 쪽 날개가 되어줄 수 있을까. 불안했지. 그랬어? 내가 되묻자 수긍한다. 진작 말해줬으면 좋았을 것을. 아니, 내가 먼저 알아챘다면 나았을 것이다. 눈치라던가, 하는 게 아직도 이렇게 없다. 나, 일어날래, 하고 말하니 순순히 몸을 치워준다. 냉큼 그녀를 안아 눕힌다. 봄날의 꽃잎같은 머리칼이 턱을 간지럽힌다. 팔을 뒤로 둘러 꾹 껴안는다. 세게, 더 세게. 이렇게 하다보면 하나가 될 수 있을까. 답답해. 그녀가 농담처럼 말한다. 등허리로 돌아간 그녀의 팔이 꼬옥, 하고 조여왔다.


괜찮아. 아니, 네가 아니면 안 되는걸. 하니 또 웃는다. 꽃처럼 웃는다. 나는 참 못났다. 이 웃음을 계속 보고 싶다고 반지를 끼워주며 생각했을 터인데. 또 이렇게 눈치없이 굴고 만다. 그녀의 마음을 진작 알았어야 하는데. 괜찮아. 그녀가 말한다. 나와는 반대다. 그녀는 지나치게 눈치가 빠르다. 너 때문이 아닌 걸. 조곤조곤 속삭이는 말투가 또 선생님같다. 아냐. 준비하기도 전에 말이 멋대로 튀어나온다. 이젠 함께인걸. 둘이 아닌걸. 팔에 좀 더 힘을 준다. 하나로, 하나로. 혼자 고민하지 마. 고독을 미래로 확장하지 마. 어디까지가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말인지 알 수 없다. 그저 되뇌인다. 아니야, 아니야. 그저 껴안는다. 너는 혼자가 아니야. 그렇게 반복했다.


제법 긴 첫날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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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을 치장창고에 처박혀 있던 것인지도 알 수 없는 야전용 간이 침대가 끼익, 하고 비명을 질렀다. 켜켜이 싸인 먼지와 곰팡내가 뒤섞여 코를 괴롭힌다. 지친다. 자신의 방에 놓여있을 인형이 그립다. 차라리 경계를 서고 있는 동료들과 자리를 바꾸고 싶다. 안 돼, 이슬비. 체력을 온존하는 것도 필요해. 그녀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모포를 뒤집어썼다가 다시 내렸다. 불안감에 들썩이는 눈꺼풀을 억지로 끌어내린다. 빨리, 자자.


그녀의 노력은 천막이 들춰지는 소리에 맥없이 스러졌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잠깐 물건이라도 가지러 온 거겠지. 이슬비는 돌아보지 않았다. 뜻밖의 무게가 그녀의 어깨를 내리누를 때까진 그랬다.


“쉿.”


놀라 들썩이는 몸이 억눌리고 숨죽인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동시에 눈앞이 푸른 어둠으로 가려졌다. 이 감촉, 이 빛깔, 이 목소리. 이세하. 넥타이라도 끌러서 온 것일까. 머리에 떠오른 이름을 내뱉으려 입을 열자 대번에 손가락이 쑤셔 들어왔다. 어디서 긁혀서 온 것인지 눅진하게 굳은 피 맛이 찝찔하다. 혼란한 중에도 기어코 머릿속을 스쳐가는 걱정에 이슬비는 흐릿하게 쓴웃음을 흘렸다. 내 코가 석자네.


몸을 더듬는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똑, 똑, 단추 풀리는 소리. 떨리는 손길에 속도가 여의찮자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뚜둑. 몇 개는 억지로 뜯겨나간다. 거칠어지는 숨소리. 귀가 간지럽다. 땀 냄새라던가, 안 나려나. 묘하게 한가한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의외로 그녀는 제법 잠에 가까워져 있었는지도. 이 상황 전체에, 현실감이라곤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스커트의 지퍼를 내리는 냉랭한 소리가 뒤늦게 그녀의 정신을 깨웠다.


“이거, 풀어.”


제법 서늘하게 목소리를 냈다고 생각했건만 입에서 새어나오는 것은 모기 날갯짓같은 호소였다. 대답은 없다. 여보라는 듯 고개를 휘저어도 시야를 가리는 푸른 천은 요지부동이다. 변하는 것이라곤 몸을 훑는 손길 뿐. 아래로, 아래로. 얇은 천 위를 쓰다듬는 손가락의 감촉이 선명하다. 신음이 제멋대로 흐른다. 한동안 무엇도 품지 못했던 비부는 금새 젖어들었다. 턱을 타고 흐르는 침의 감촉에 이슬비는 자신이 어느샌가 입안의 손가락을 핥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속옷 위를 맴돌던 손가락이 흘러나온 꿀을 조금 퍼내올려 그녀의 달아오른 뺨에 비볐다. 지금은 안 되는데, 하는 생각도 잠시였다. 힘을 빼고 몸을 기대자 손길이 그녀를 안아들어 앉혔다.


숨죽인 목소리가 텐트를 채울 때까지는, 그로부터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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